70년 넘게 외쳐온 '미제 타도'...한미연합훈련 축소를 바라보는 북한의 속내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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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가 21일 급작스럽게 종료됐다. 훈련 기간은 11일에서 5일로 줄었고 2부 훈련은 아예 생략됐다. 진행 중이던 전구급 한미 연합훈련의 기간과 규모가 축소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연내에 만나자"며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와 유사한 행보다.

일단 북한의 반응은 시큰둥해 보인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밤 담화에서 "평할 가치도 없다",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20일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동해상으로 쏘아 올렸다. 올해 들어 12번째 발사였다.

그날 밤 김여정은 또다시 담화를 냈다. 이번에는 한국을 겨냥해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제일 즐겨하던 전쟁놀이 판을 못하게 된 가긍한 처지"라고 조롱했다. 북한은 지난 70여 년 간 늘상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공화국(북한)을 반대하는 전쟁도발책동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쳐왔다.

말로는 관심 없다면서 이틀 연속 담화를 내고 연합훈련 축소에는 미사일로 답했다. 이 엇갈린 신호에 담긴 북한의 셈법은 무엇일까.

북한에게 '한미 연합훈련'이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단 이후 켜켜이 쌓여온 지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연구소장을 지낸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BBC에 "북한은 1953년 정전 이후부터 로동신문을 통해 끊임없이 '미제 타도'를 외쳐왔다"며 "북한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난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1차 목표"라고 말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주한미군이 주둔하게 됐고, 이것이 북한이 달성하고자 했던 '적화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창출해야 한다"면서 "미 제국주의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야 반미 정서로 주민들을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실질적 목표와 김일성 유일영도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미국 타도'라는 상징적 목표가 동시에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 "공동성명-남조선으로부터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기 위한 '반미공동투쟁월간'에 즈음하여" (1973년 6월 29일 1면)
  • "미제는 남조선에서 물러가야 한다" (1973년 11월 25일 4면)
  • "미제는 조선전쟁의 침략자" (1975년 8월 11일 5면)
  • "미제는 조선에서의 새 전쟁 도발책동을 당장 중지하고 남조선에서 즉시 물러가라!" (1976년 8월 19일 5면)
  •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려는 미제의 무모한 군사도발을 단호히 규탄한다" (1976년 8월 20일 2면)
  • "미국은 남조선에서 미군과 핵무기를 즉시 철거시키라" (1977년 8월 4일 5면)
  • "조선을 영원히 분렬시키려는 미제의 침략책동을 견결히 규탄한다" (1981년 10월 18일 7면)
  •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시키고 민주화를 실현하며 반공대결정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1982년 1월 28일 5면)
  • "미제의 핵전쟁흉계는 변하지 않았다" (1992년 9월 17일 5면)
  • "반미자주를 위한 정의의 투쟁에 힘차게 떨쳐 나서자" (2002년 8월 12일 5면)

이러한 규탄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모양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연합훈련이 진행 중이던 지난 19일 논평을 통해 "적들의 군사적 위협을 철저히 무력화하기 위한 우리의 자위적 권리 행사는 더욱 명백한 행동으로 표현될 것"이라며 "적수국들의 모든 침략 전쟁연습은 절대로 그 시행자들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해당 논평은 북한 주민들이 보는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도 그대로 실렸다. 하지만 훈련이 축소됐다는 사실 자체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정영태 교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미국을 상대할 레버리지가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핵무기"라고 강조했다. "핵만 있으면 상대가 강대국이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이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에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다. 북한이 그토록 치를 떠는 주한미군이 정작 북한 체제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역설, 주둔의 명분인 동시에 내부 결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외부의 적', '공공의 적'이라는 말이다.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국민대 겸임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유엔총회 연설부터 미국 중간선거, 중국 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지는 하반기 일정 속에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는 것.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나름의 제안을 했다"며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아니어도 이재명 정부가 원하는 '중단' 선언 정도라도 끌어내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을 협상 카드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집권 1기이던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 직후 "비핵화 협상을 하는 동안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로 예정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28년 만에 중단됐고, 이듬해에는 키리졸브·독수리훈련까지 잇따라 폐지됐다. 이렇게 축소된 한미 연합훈련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상화 수순을 밟았다.

때문에 이 같은 미국의 제안이 북한에게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곽길섭 교수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회담 직후에는 한미 연합훈련을 무기한 중단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부분 축소에 그쳤으니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판을 깔아주는 것 같지만 정작 북한이 보기에는 8년 전 이미 받아본 카드의 축소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여정 담화 속 온도차

실제 김여정의 19일과 20일 담화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일 담화에서 김여정은 훈련 축소를 "평할 가치도 없다"고 평가절하하면서도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의 문은 열어둔 것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9일 담화와 관련해 "단순한 대미 메시지가 아닌, 해석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종합정리"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개인관계는 살려두되 그것이 현재 북미관계를 움직이는 정책 변수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훈련 축소를 선의로 띄우려는 워싱턴과 서울의 셈법을 개인적 친분과 정책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미리 차단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2018~2019년 당시는 두 정상의 개인적 관계 자체가 외교를 움직이는 자산이었다면, 지금은 핵보유가 북한 헌법에 명문화되고 북러 안보협력도 강화된 만큼 김정은이 과거 추억만 믿고 협상장에 나올 이유는 많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미사일을 쏜 20일 밤 담화는 어땠을까. 김여정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서울은 제일 즐겨 하던 전쟁놀이 판을 못 하게 된 가긍한 처지"라고 조롱했다. 이는 2023년 말 '두 국가' 선언 이후 한국을 상대 안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곽길섭 교수는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김정은이 협상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기 위해 당분간 강경한 입장과 군사력 시위를 이어가려는 전략"으로 해석했다. 트럼프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동시에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는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 훈련 축소를 내심 '자신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영태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미국이 결국 자신의 트랩(덫)에 들어오고 있다'는 식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런 자신감을 대내적으로 마음껏 선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 이유는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체제 결속의 명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북한에게 연합훈련이 축소된 것 자체는 반갑겠지만, 그것을 마냥 티 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미사일 발사와 김여정의 대남 조롱을 유화 국면 속에서도 '적대적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중 포석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갑'이 된 김정은?

일각에선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석좌교수는 "아예 판 자체가 북한에 가장 유리하게 짜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페이스메이커' 행보에 김정은의 오랜 요구(핵보유 인정 및 대북 적대 정책 철회)까지 겹쳐 남북미 3국 정상 간 이해관계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트럼프가 을"이라며 "이란 전쟁이 마음대로 안 되니 그 관심을 북한으로 돌려 11월 중간선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특히 연내 북미대화가 개최될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하는 결과물은 사실상의 핵보유 인정, 유엔(UN) 제재 완화,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이다.

그는 "(트럼프의 말로는) 북한이 핵탄두 57기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그것을 폐기하라고 하겠나, 못 한다"며 "결국 보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만 "공식 발표가 '핵보유국 인정'으로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성명 형태로 명문화되느냐와 별개로 실질적인 내용은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때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 교수는 "그때는 볼턴 같은 매파가 미국 내에서 제동을 걸었지만 지금은 그런 세력이 없다"면서 "트럼프의 한마디면 그대로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결과가 국민과 국가 안보 입장에서 보면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길섭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이번 제안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만큼, '옛날에 다 했던 것들이니 진짜를 보여달라'는 식으로 오히려 트럼프를 더 세게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트럼프가 더 많은 제안과 더 강한 액션을 보일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내가 평양에 갈 수도 있다'는 식의 쇼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물밑에서부터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미 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의 20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 인력이나 영토, 동맹국에 즉각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

그럼에도 정영태 교수의 분석처럼 북한에 반미 적개심이 필수 자원이라면, 이번 훈련 축소가 실제 북미 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관심 없다"는 말과 "미사일 발사"가 한동안 번갈아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밑 협상의 시작으로 볼 것인지, 남북미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위험한 순간으로 볼 것인지, 같은 국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