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월세에 분노'…스페인 전역서 대규모 주택 시위

동영상 설명, 스페인에서 수백만 명이 저렴한 주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 기자, 엘라 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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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수백만 명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인 정부가 긴급 주택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뒤 수만 명이 세입자 보호 강화를 요구하며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3일(현지시간)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약 50건의 시위가 열렸다.

발렌시아 세입자 연합 대변인은 "거리에는 분노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발렌시아에서는 일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 연립정부가 전날 내놓은 대책은 지난달 급격한 임대료 인상을 감당하지 못한 87세 여성이 집에서 강제 퇴거당한 뒤 거센 여론의 반발이 일면서 마련됐다.

이 여성의 퇴거는 스페인 전역에서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대는 임대료 인하와 강제 퇴거 중단, 정부가 '벌처펀드'라고 부르는 투자펀드의 부동산 매입 금지를 요구했다.

지난 2일 산체스 총리가 의회 표결에서 패배하면서 당초 내년 여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산체스 총리의 연립정부는 집권 사회당과 연정 파트너인 수마르 연합으로 구성돼 있지만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3일 스페인 동부 해안 도시 발렌시아에서는 부동산 관련 행사가 열리던 팔라우 데 레스 아르츠 레이나 소피아 인근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일부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경찰관들에게 물건을 던졌으며, 경찰은 고무탄으로 대응했다. 공영방송 RTVE는 경찰관 9명이 다치고 5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수만 명이 마드리드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사진 설명, 수만 명이 마드리드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발렌시아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사진 설명, 발렌시아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 중 하나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렸다. 참가자 수를 놓고는 추산이 크게 엇갈렸다. 마드리드 세입자 연합은 50만 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한 반면 당국은 7만 명으로 추산했다.

시위대는 "임대 수익주의에 평화는 없다", "나는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좁은 아파트에 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이들은 손에 든 열쇠를 흔들며 "이 도시 전체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마드리드의 주요 광장 중 하나인 푸에르타 델 솔에서 며칠째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였다.

시위 참가자 데이비드는 시위에 앞서 RTVE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신념 때문에 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26세 사서 마르코스 사인즈는 AFP 통신에 과거 친구들과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함께 쓰며 월 900유로(약 136만원)의 임대료를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방 하나짜리 아파트도 월세가 1000유로(약 152만원)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인즈는 "누군가 나서서 이 모든 것을 규제할 때까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마드리드를 떠나야 할 때까지" 임대료 인상에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요일 밤 마드리드 세입자 연합은 정부가 제시한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법안 부결은 "노동계층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주택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밝혔다.

세입자 연합은 주택 위기에 항의하는 총파업도 촉구하고 있다.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위대가 며칠째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설명,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위대가 며칠째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시위대가 마드리드에 집결했다
사진 설명, 수많은 시위대가 마드리드에 집결했다

지난 2일 의회에 제출된 주택 대책은 두 개의 법령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법령에는 취약계층 세입자에 대한 강제 퇴거를 2030년까지 유예하고, 2028년 이전 만료되는 임대계약을 2년 연장하는 방안이 담겼다. 관광용 아파트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이른바 '벌처펀드'의 주거용 부동산 매입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두 번째 법령에는 임대계약을 자동 갱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좌파 진영과 세입자 연합이 강하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의회는 첫 번째 법령을 178대 172로 부결했고, 두 번째 법령도 184대 166으로 부결했다.

표결에 앞서 보수 성향의 국민당과 극우 복스는 두 법령 모두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수정부인 산체스 정부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군소 민족주의 정당들의 지지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의회 회의를 하루 앞두고 중도우파 성향의 카탈루냐 분리독립 지지 정당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가 두 법령 모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부결이 사실상 확정됐다.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립정부는 지난 9월 87세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강제 퇴거당한 뒤 촉발된 주택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관련 법령을 서둘러 마련했다.

사회적 반발이 거세지자 아바스칼의 아파트를 소유한 회사 우르바헤스티온은 낮은 임대료를 적용해 아바스칼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주택 수요와 신규 건설 물량의 격차를 토대로 스페인에 주택 약 70만 채가 부족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스페인 국가통계연구소의 2026년 2분기 자료에 따르면 주택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2% 상승했다.

부동산 업체 아이디얼리스타에 따르면 임대주택 부족으로 2025년 스페인 임대료는 8.5% 상승했으며, 마드리드에서는 9.7% 올랐다.

아이디얼리스타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가 스페인에서 주택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도시라며, ㎡당 임대료가 각각 23.80유로(약 3만6000원)와 22.70유로라고 밝혔다.